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서 LK-99라는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뉴스 거리가 된 적이 있다. 구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금속 중에서 전기를 가장 잘 흐르게 하는 재료 중 하나 이다. 금의 전기 저항이 구리 보다 작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모든 곳에 금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전선이나 회로 기판 등, 전기가 지나가야 하는 곳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값이 싼 구리이다.
구리는 전기 전도도가 매우 뛰어난 금속이다. 자유 전자가 많고, 이 전자들이 도체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전기가 잘 통한다. 만일 구리를 이용하여 상온에서 초전도체를 만든다면 상상할 수 없는 기술 혁신이 될 것이고 여러가지 기술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구리로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다.
금속의 전기 저항
금속 내에서 전기 저항이 생기는 이유는 전류를 운반하는 자유 전자가 금속 내부를 이동할 때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첫째, 격자 진동 (Lattice Vibrations) 또는 포논(Phonons)과의 충돌때문이다. 금속 원자들은 고정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형점 주위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이러한 원자들의 집단적인 진동을 격자 진동이라고 하며, 양자화된 격자 진동 에너지를 포논이라고 부른다. 아래에 있는 동영상은 전기 저항이 있을 때와 초전도체 일 때 전자 이동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자유 전자가 금속 내부를 이동할 때, 이렇게 진동하는 원자핵과 충돌하게 되고, 이 충돌로 인해 전자는 에너지를 잃고 진행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충돌은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여 전기 저항을 유발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격자 진동이 심해져 충돌 빈도가 높아지므로, 대부분의 금속에서 온도가 상승하면 저항도 커진다.
둘째, 결함(Defects) 및 불순물(Impurities)과의 충돌 때문이다. 완벽한 결정 구조를 가진 금속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실제 금속에는 여러 가지 결정 구조의 불완전성, 즉 결함이 존재하는데 점 결함, 선 결함, 면 결함이 있다.
점 결함(Point defects)은 원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는 공공(vacancy), 다른 종류의 원자가 끼어든 치환형 불순물(substitutional impurity) 또는 격자 사이에 끼어든 침입형 불순물(interstitial impurity) 등이 있다.
선 결함(Line defects)은 전위(dislocation)와 같이 원자 배열이 어긋난 선 형태의 결함이다.
면 결함 (Surface defects)은 결정립계(grain boundary)와 같이 서로 다른 결정 방향을 가진 작은 결정립들 사이의 경계면이다.
세째, 불순물 즉 금속 제조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섞여 들어간 다른 종류의 원자나, 합금처럼 의도적으로 첨가된 원자들도 전자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러한 결함이나 불순물들은 금속 내 균일한 원자 배열을 깨뜨려 전자의 경로를 산란시킨다. 전자는 이러한 불규칙한 지점에서 마치 장애물을 만난 것처럼 충돌하거나 경로가 휘어져 저항이 발생한다. 결함과 불순물에 의한 저항은 온도 변화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며, 주로 재료의 순도나 가공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를 잔류 저항(residual resistivity)이라고도 한다.
네째, 전자-전자 상호작용 (Electron-Electron Interaction) 때문이다. 자유 전자가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에 의해서 산란되면 전자들끼리 충돌하거나 간섭할 수 있다. 매우 낮은 온도나 특정 조건에서는 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저항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금속 및 온도에서는 격자 진동이나 결함에 의한 산란에 비해 그 영향이 작다.
따라서 구리는 전기 저항이 작은 금속이지만 전기 저항이 없는 초전도체와는 다른 것이다.
초전도체가 가지는 세 가지 특성
전기 저항이 전혀 없는 도체를 초전도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초전도(superconductivity)는 아주 특별한 조건이 만족될 때(보통은 초저온 상태) 금속 내부에서 전기 저항이 0 이 되고, 자기장을 밀어내는 특성을 보이는 현상이다. 이러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임계 온도(Critical Temperature, Tc) 이하로 냉각되어야 한다.
모든 초전도체는 각자의 고유한 임계 온도를 가지고 있다. 이 온도 이하로 냉각되어야만 초전도 현상이 발현된다. 온도를 낮추면 원자들의 열운동(thermal vibration)이 줄어들게 되며, 전자의 운동이 훨씬 원활해진다. 어느 임계점을 지나면 전자들이 쿠퍼쌍(Cooper pair)이라는 상태로 짝을 이루고 저항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아래에 쿠퍼쌍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영상이 있다.
임계 온도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절대 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부터 비교적 높은 온도에 이르기까지 분포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온 초전도체의 경우에도 액체 질소 온도 (약 77K, -196°C) 근처 또는 그 이상의 임계 온도를 가지지만, 여전히 상온 초전도체는 개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초전도 현상을 관찰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물질의 임계 온도 이하로 냉각시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둘째, 임계 자기장 (Critical Magnetic Field, Hc)이하의 자기장 환경에 있어야 한다.
초전도체는 임계 온도 이하로 냉각되더라도 매우 강한 자기장에 노출되면 초전도 상태를 잃고 일반적인 도체 상태로 돌아간다. 이 한계 자기장을 임계 자기장이라고 부른다. 초전도체 내부에서는 외부 자기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장을 반사(또는 배척)하는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가 발생하고, 그 결과 자기력이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고, 금속을 공중에 띄우는 자기부상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외부 자기장이 너무 세지면, 초전도체 내부에 자기장이 침투하게 되어 쿠퍼쌍이 깨지기 시작하고, 결국 저항이 다시 생긴다. 임계 자기장의 세기 역시 물질의 종류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임계 온도에 가까워질수록 임계 자기장의 세기는 약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기장이 해당 물질의 특정 온도에서의 임계 자기장보다 낮아야 한다.
세째, 임계 전류 밀도(Critical Current Density, Jc) 이하의 전류가 흘러야 한다.
초전도체에 흐르는 전류의 밀도가 특정 한계를 넘어서면 초전도 상태가 파괴된다. 이 한계 전류 밀도를 임계 전류 밀도라고 한다. 임계 전류 밀도를 초과하는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도 세지고, 이 자기장이 다시 초전도체 내부로 침투하면서 쿠퍼쌍을 끊어놓고, 결국 저항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열이 발생하여 전체적으로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임계 전류 밀도 역시 물질의 종류, 온도, 그리고 외부 자기장의 세기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초전도체에 전류를 흘려 응용할 때에는 해당 물질의 임계 전류 밀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위 세 가지 조건, 즉 임계 온도, 임계 자기장, 임계 전류 밀도는 초전도체가 초전도성을 나타내기 위한 핵심적인 경계 조건들이다. 이 조건들을 만족할 때 비로소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 0의 특성과 완전 반자성 효과(마이스너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초전도는 아무 금속에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특정한 금속이나 세라믹 같은 복합 재료를 아주 낮은 온도(수십 켈빈 이하)로 냉각해야만 발생한다. 그 이유는, 이 상태에서 전자들이 쿠퍼쌍(Cooper pair)이라는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원래는 전자끼리는 같은 부호의 전하를 갖고 있어서 서로 밀어내야 정상인데, 초전도체 안에서는 격자의 진동을 매개로 해서 둘이 손을 맞잡고 함께 움직이게 된다. 이 쿠퍼쌍은 주변의 격자에 부딪혀 산란되지 않기 때문에, 전기 저항 없이 물질 내부를 흐를 수 있는 것이다.
구리가 초전도체로 될 수 없는 이유
그렇다면 구리는 초전도체가 아니지만, 만약 내부의 원자 배열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혹시 전기 저항을 0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애래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첫째, 구리의 격자 진동이 너무 약해서이다. 구리는 도체(conductor)로는 매우 훌륭하다. 전자를 너무도 잘 흐르게 해준다. 구리의 전도전자들은 너무 자유로워서 결정 격자의 떨림(phonon) 따위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전자들이 격자 진동과 강하게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쿠퍼 쌍을 형성할 수가 없다.
초전도는 격자 진동과 전자의 약한 상호작용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구리에 있는 전자들이 너무 자유롭기 때문에 격자 진동과 상호작용을 안하는 것이다.
둘째, 구리의 전자 밴드 구조 때문이다. 초전도체가 되려면 전자들이 특정 에너지 밴드에서 서로 교환하며 쌍을 맺기 쉬운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구리의 전자 밴드는 너무 넓고, 전자 상태 밀도가 낮아서 쌍을 맺기 위한 좋은 환경의 전자 밴드 구조가 아니다. 이런 전자 밴드 구조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기 힘든 전자 에너지 분포를 만든다.
물리학에서 밴드 구조는 고체 안의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 레벨들의 분포를 말한다. 이는 결정 구조에 따라 에너지 띠(band)가 생기고, 그 사이에는 전자가 존재할 수 없는 밴드 갭(gap)이 생기는 양자역학적 현상이다. 구리는 금속이라서 이런 밴드 구조에서 밴드 갭이 없고, 전도대(conduction band)가 일부 채워져 있어. 이게 전류가 쉽게 흐를 수 있는 이유이다.
구리의 밴드 구조는 좁고 평평한 3d 밴드 + 넓은 4s 밴드구조(~ 3d¹⁰ 4s¹ )이다. 즉, 3d 전자 10개가 가득 차 있고, 4s 전자가 1개 있는 구조이다. 이게 밴드 구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리는 4s 밴드에 있는 4s 전자는 에너지적으로 높지만 공간적으로 넓게 퍼져 있어 전도성이 우수하지만, 격자의 진동(phonon) 같은 미세한 교란에 거의 반응하지 않기때문에 전자-격자 상호작용이 없어서 쿠퍼 쌍 형성을 방해한다.
또한 3d 밴드에 있는 3s 전자들은 에너지는 낮지만 좁고 평평한 밴드를 형성하여 거의 모두 채워져 있고, 그 결과전자 간 상호작용(특히 강한 쿨롱 상호작용)을 야기하여 강한 반발력을 가지게 되어 초전도성을 방해한다.
결론적으로, 구리 자체의 전자적 특성과 밴드 구조는 일반적인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초전도체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특정 임계 온도 이하에서의 전기 저항 제로 및 마이스너 효과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초전도체가 될 수 없다.
구리의 원자 배열을 바꾼다면?
그럼 어떤 독자는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다. 구리의 원자 배열을 바꾸면 전자 산란을 줄이거나, 새로운 물리적 현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예를 들어, 원자를 일정한 패턴으로 배치해서 초격자(superlattice) 구조를 만들어 새로운 전자 밴드를 형성시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게 한다든지, 혹은 구리를 단 한 층 두께로 깎아서 2차원 재료로 만든다면 전자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또 한 가지 방법은, 구리 격자에 엄청난 압력이나 변형을 가해서 응력에 따른 결정 변화를 유도하면 전자 밴드 구조가 바뀌면서 초전도 상태에 가까운 새로운 물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로도 아직까지 구리를 초전도체로 만든 사례는 없다. 물론 이런 방식이 지금 당장 초전도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아직 인류의 과학기술은 원자 하나 하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리 같은 평범한 금속을 고도로 정밀하게 제어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양자 상태를 이끌어낸다는 건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원자 하나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놓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나노 기술과 양자 시뮬레이션, 그리고 인공지능 설계 기술이 함께 작동한다면, 전자들이 산란 없이 흘러갈 수 있는 최적의 격자 배열을 AI가 계산해서 알려주고, 그것을 나노봇이 조립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AI 설계자 + 양자 엔지니어 + 나노 기술자가 한 팀이 되어 구리 내부에 전자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아직 실현하기 어려운 기술로써 미래에서나 기대할 만한 기술이다. 원자 단위의 배열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구리도 초전도체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마무리
과학 기술의 역사는 항상 이런 식이다. 100년 전에는 “빛보다 빠른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중력파를 탐지하고 블랙홀 그림까지 찍는 시대가 됐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원자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여 지금은 구리가 도체일 뿐이지만 그 때는 초전도체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