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중 환단고기 라는 역사서를 알고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우리나라 고대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고조선 이전과 이후의 고대 찬란했던 우리 나라 역사에 관한 미스터리 역사서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황당무개 할 수도 있고 정말로 우리의 역사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이 미스터리한 역사서인 환단고기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가체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자.
환단고기의 구성과 내용
환단고기는 네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인과 환웅의 역사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겨있는 단군 세기,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의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 마지막으로 태백일사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 만년이 아니라 일만 년이라고 말 하고 있다. 단군 조선이 있기 전에 5000 년의 역사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최초의 환국이 있었고 환국의 뒤를 이어 신시라고 불리는 배달국이 있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후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 북부여의 뒤를 이은 고구려, 대진국이라고 하는 발해, 그리고 고려의 역사로 펼쳐진다. 특히 상고시대가 찬란했던 1만 년 전 탄생한 최초의 국가 환국은 3301년 동안 일곱 명의 환인이 통치했다고 한다.
그후 신시 배달국은 18 명의 환웅이 1500년 이상 다스렸다고 한다. 환국과 신시 배달국이 5000년 정도 이어진 후 마침내 단군 조선이 탄생하는데 47 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파내류산 아래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의 동쪽 땅이다.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이른다. 파내류산 지금의 시베리아 중앙공원에 해당하고 천해는 바이칼 호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1만 년 전에 탄생한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선 당시 한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자랑하던 나라였고 이 땅에서 12개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나라들 중에 수밀이국이란 나라가 있다. 일부에선 이 수밀이국을 고대 수메르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민족이 우리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광활한 영토뿐만 아니라 환단고기에는 눈부신 영웅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영웅은 치우 천황이다. 신라시대의 도깨비 기와에 있는 모습이 치우 천황의 얼굴이라고 전해진다.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치우천왕은 5000년 전에 이미 철제 무기를 사용했던 인물로 전쟁의 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좌우지 환웅이 있었는데 머리는 구리로 두르고 이마는 쇠로 가린 모습이었으며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내니 온 천하가 두려워했고 그를 치우천황이라 불렀다. 중국의 헌원 황제가 치우천황과 수십 번을 싸웠지만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이런 치우와 싸웠던 중국의 역사도 우리 민족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5대 다이발 환웅의 막내아들은 태호 복희라고 한다. 태호 복희는 상황우제 중 1번째 인물로 우사라는 관직에 있다가 지인으로 갔다,
이후 복희는 중국의 시조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바로 화농의 아들이라면 중국의 역사도 우리 민족에서 시작된 것이 된다. 이렇게 환단고기에는 하늘의 백성인 우리 민족이 광활한 대륙을 무대로 찬란한 문명을 보여 주며 활약했던 얘기가 담겨있다.
이 환단고기에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이 돼 있다.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가는 역사, 아시아 대륙을 넘나드는 광활한 영토,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까지 이 환단고기에 담겨 있는 우리의 상고사는 참으로 눈부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주 놀라운 일들이 또 많이 담겨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례와는 달리 우리 민족의 위대성과 우리 민족의 영토와 같은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여부와는 관련 없이 우리 민족의 위대성 원하는 사람들 또는 민족의 정체성을 자극하고자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책이었다.
환단고기 속의 가림토 문자
환단 고기에만 나타나는 문자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것을 가림토 문자라고 말한다. 이 문자는 한글과 아주 비슷한 그런 모양으로 생긴 이 가림토 문자는 이미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이 환단고기에는 기록이 돼 있다.
또 이 가림토 문자를 쓰기 전에는 태고 문자인 녹도 문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녹도 문자의 구체적인 형태는 이 환단고기에 적혀있지 않다. 이런 내용이 실려있는 이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문자를 만든 최초의 민족이 된다.
더 크게는 최초로 문명국가를 세운 민족이자 중국과 아시아 각국의 이 문명을 전파한 하늘에 민족이라고 한다 참 지금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믿고 싶은 그런 내용이기도 하다. 이렇게 상반된 마음은 이 환단고기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환단고기의 공개 미스터리
환단고기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아주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다. 이 환단고기는 네 권의 책을 묶어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든 책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기와 단군세기 그리고 북부여기와 태백일사 중에서 삼성기는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다섯 권의 저자는 각각 다르고 또 이 저자들이 살았던 시대도 다르다.
이 삼성기에 상하권을 쓴 아난로와 원동중은 신라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또 이 단군 세기와 북부여기의 저자인 이암과 범장은 고려시대에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맥은 조선시대 사람으로 기록이 돼 있다. 이 저자들 중에서 이암과 범장 그리고 이맥처럼 다른 사료에서 그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이 있지만 이들이 실제로 그 책을 썼는지는 다른 사료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저자들이 썼다는 책들은 남아있지 않고 1911년에 네 권의 책을 묶어서 한 권으로 만든 이 환단고기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 책 범례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신시계천 5808년 계연수가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다.” 범례에 의하면 1911년에 네 권의 책을 묶은 사람은 계연수란 인물이다. 그리고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필사한 장소는 묘향산 단굴암이라고 한다.
그런데 1911년 계연수가 편집했다는 이 환단고기의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9년이다. 재야 사학자 송호수 씨는 줄곧 환단고기 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1979년에 인쇄된 환단고기 영인본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영인본을 가지고 있고 20년 가까이 환단고기를 연구해온 그도 환단고기 원본을 본 적이 없다.
환단고기를 펴냈다는 계연수에 대해서도 소문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일설에 의하면 계연수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체포된 이후 일본인들이 압록강에다 시신을 버려서 시체도 못 찾았다는 소리 있다.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이기는 한 말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애국계몽운동가였다. 책을 인쇄하는데 자금을 냈다는 홍범도는 간도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였다.
홍범도와 함께 자금을 댔다는 오동진 역시 간도에서 활약한 독립투사였다. 이기와 홍범도 오동진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이자 대중교와 관련 있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계연수도 대종교도이자 독립운동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70년 후 이유립이란 인물이 공개하면서부터다. 70년 후에야 책이 나타난 점 때문에 환단고기 편자는 계연수가 아닌 이유립이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유립은 이미 사망한 상태다.
1979년 이유립이 세상에 공개한 환단고기는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가 쓴 책이 1982년에 일본에서 일본어 번역본이 나오면서부터 였다. 일본어 번역본은 신국민사 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가지마노보루가 펴낸 것이다. 이것이 국내에 역수입 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 후 한국에선 가지마노보루의 해석과는 다른 독자적인 번역본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에는 수수께끼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미스터리한 부분 때문에 이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환단고기의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
이 환단고기에는 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아주 상세하게 실려 있다. 단군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발견된 책은 삼국유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단군에 대한 기록은 아주 매우 짧고 압축적이다.
단군이 고조선을 통치한 기간은 1500년이다. 그 수명은 1908 세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환단고기에는 2000년이 넘게 지속된 고조선을 한 사람이 아니라 47 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기록이 돼 있다.
그러면서도 이 47명 단군의 이름과 재위 기간과 치적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구체적인 것까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단군을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왕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본 그리고 고조선을 수십 명의 단군들이 통치했다고 본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환단고기의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엔 다양한 천문현상이 나타났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오성취루현상이다. 오성취루란 목성과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나란히 늘어서는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이러한 장관이 13대 단군 때 나타났다고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오성취로현상은 서기 전 1733년에 나타난다. 현대의 천문관측 프로그램에 입력해 본 결과 1년 전인 서기 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다섯 개의 별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고조선의 영역은 현재의 북경에서부터 만주 전 지역과 한반도 전체를 포함했다고 한다. 한 시대의 영토를 추정하는 방법 중 하나는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과 함께 해당 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지역을 참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로 여겨지며, 이는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환단고기의 사회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서령이다. 수서령은 조선 시대 세조, 예종, 성종 때 활동한 관찰사에게 명령하여 옛부터 전해지는 희귀 서적을 전국에서 수집하도록 한 일이다.
이러한 수서령이 내려진 책들 중 환단고기에 실린 책과 제목이 일치하는 경우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삼성기다. 이러한 책들이 왜 수집되었는지는 역사적 맥락과 국가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부정하는 이유
환단고기는 그 출처와 저자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학계에서는 대체로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책의 저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환단고기를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1911년에 다섯 권의 책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 개연수에 대해서도 그의 편집본이 전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약 70년 후에 개연수의 제자로 알려진 이유립이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내용 중 일부는 현대적 용어의 사용으로 인해 시대적 맥락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산업’이나 ‘국가’, ‘남녀평등’과 같은 용어가 고려 시대에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용어 사용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단군은 역사인가 신화인가
1900년대 초까지 단군에 대해 뚜렷한 역사의식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조선시대까지 단군은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이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국조를 모신 성전은 옛 평양에 숙명전이었는데, 이것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군을 국조로 모셨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제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우리의 역사를 축소하는 일이었다. 일본의 역사가 기원전 2600 년으로 돼 있는데 우리나라 역사는 5000년 이다보니 자기들의 역사에는 반도 안 되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우리를 정복해서 식민지 정책을 핀다고 하는 건 논리성으로 도저히 그 납득이 안 되는 것 이었다.
더구나 그 후대의 역사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민족의 자기 역사의 우수성을 확보해 가지고 가르쳐야 되는데 그러한 일을 하려면 먼저 우리 역사의 유구성을 말살시켜야 되기 때문에 그의 관련되는 기록들을 다 없애는 것 이었다.
일본은 우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일제는 조선사 편수의 사업이란 이름으로 서적을 색출했다. 1910년 11월부터 14개월 동안 전국에서 거둬들인 책이 무려 51 종 20만 권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거둬들인 책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단군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역사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결국 조선시대 말까지 단군은 역사로 남아 있어 살아있었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 기록이 모두 말살되고 사라져버려 현재는 역사와 신화의 중간에 어설프게 존재하는 것으로 되었다.
환단고기가 가지는 의미
고대 역사서인 “환단고기”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역사에 대한 독특하고 독창적인 해석을 제공하며, 특히 한국의 고대사와 민족 정체성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환단고기는 한국 민족의 오랜 역사와 위대성을 강조하며, 특히 고조선과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재조명하려고 한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환단고기는 기존의 역사적 기록과 다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상상력과 해석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한다. 이는 역사학에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환단고기의 내용은 그 진위와 학문적 가치에 대해 광범위한 논쟁을 촉발했다. 이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연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4환단고기는 문화적 매체와 대중 문화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책에 나타난 이야기와 주장은 문학,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에 영감을 제공했다.
환단고기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인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과 전설, 신화가 어떻게 서로 교차하며 형성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의 학문적 가치와 진위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책의 내용이 전통적인 역사적 기록과 상당 부분 상충되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를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한국 역사 연구에 있어 매우 흥미로운,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로 남아 있다.
마무리
환단고기 역사서는 비록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 고대사의 찬란했던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우리 영토로 삼아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켰던 장엄한 역사를 지닌 사서이다.
지금은 과거의 그 장엄한 역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역사서라고 생각한다. 미스터리한 부분과 의심되는 부분이 있는 역사서이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큰 의미가 있는 사서이다.
잊혀진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에는 우리의 역사가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며 세계 최고의 민족으로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